분류 전체보기9 턱이 아프도록 하품을 했다: 이펙사(venlafaxine) 국가고시를 치렀던 그 해, 그 계절은 정말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휴학으로 인해 미처 이수하지 못한 학점을 한꺼번에 채우느라 다른 동기들이 10학점 내외의 수업을 들을 때에 나는 23학점을 수강했고, 그 와중에 모 회사에 합격해 버리는 바람에 입사 전 프로젝트까지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국가고시를 준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모자란 데다가 스트레스는 어마무시한 이명과 기면증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 진짜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다. 특히 기면증은 고통스러움을 넘어 자괴감까지 들게 했다. 아니 이건 뭐 쩨쩨파리에라도 물린거 아냐, 농담처럼 말은 했지만 잠을 이겨 보겠다고 사람 북적이는 카페에 책을 들고 앉아도, 지하철 플랫폼 의자에 앉아도,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쓰러져 자고 있었으니 늘 불.. 2020. 2. 20. 나는 왜 정신과에 (1) 소발작(absence seizure) 정신적으로 온전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여야 가능한 이야기일까. 갈수록 인식이 개선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이 신경정신과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간혹 그런 사실을 조금 '있어보인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다(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이십년 전을 생각해보면 '용인정신병원', '하얀 집' 과 같이 정신병원을 대표하는 용어는 굉장히 공포스럽고 괴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지금도 '곤지암' 같은 영화에서 정신병원은 공포 서사의 배경이 되기는 하지만,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예쁜 말이 통용되는 덕분인지 '정신병원' --> '정신병자', '정신병동' --> 공포의 대상 과 같은 사고의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 2020. 2. 20. 베르무트와 토푸렉실 바르셀로나 여행 3일차. 1일 3 알코올을 매일매일 실천하고 있던 우리는, 까바(cava)와 레드와인(red wine)을 벗어나 베르무트(vermut)라는 술을 마셔보고 싶어졌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리워질 낮술과 타파스라는 조합을 맘껏 즐기기 위해, 대낮부터 vermuteria를 찾았다. 열심히 서치해 찾은 최종 목적지는,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La vermu'라는 vermuteria였다. 그 바가 위치한 거리는 너무 한적해서, 이거 장사를 안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잠시, 빨간 문이 아주 인상적인 이 bar 가까이에 다가서는 순간부터, 거의 뭐 월드컵 때 스크린 달린 치킨집에서 느껴지는 열기 정도의 데시벨로 스패니쉬의 강렬한 억양이 묻어나는 왁자지껄 대화 소리가 우리를 압도했다. .. 2020. 1. 1. 가슴이 아파서 잔탁을 먹었어. 열 다섯 즈음이었을 것이다. 같은 반에 유난히도 빛나는 아이가 있었다. 특별히 인기가 많았던 아이는 아니니 어쩌면 내 눈에만 빛났을지도 모른다. 당시 유행했던 반무테 안경이 지적으로 어울리고, 웃을 때 작아지는 두 눈이 귀여운 아이였다. 곁에 가까이 가면 은은한 향기가 났고, 나는 나중에서야 그 냄새가 뉴트로지나 바디로션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에게 지금도 그 향은 그 아이의 향기로 기억되고 있다. 많은 여중생 또는 여고생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동성 친구에 대해 단순한 우정 이상으로 동경의 마음과 애정을 갖던 시기가 있었고, 그 중 내 마음이 가장 길게 머물렀던 곳은 그 아이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갔다가 밤이 깊어진 바람에 그 아이의 아버지께서 나를 집까지 차로 .. 2019. 10. 8.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