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드린이 내년부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역시 그였다. 아직 바뀌지 않은 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아직 바뀌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른한 햇살을 연상시킬 그의 컬러링 Sondre Lerche의 음악을 들은 후, 이 소식을 알려주며 슬며시 그의 안부를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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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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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드린을 처음 알게 된 건 6년 전 그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그의 집에 갔을 때였다.
그날따라 머리가 너무 아파서 집에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그렇게 애정어린 마음으로 걱정해 본 적이 많지 않았던 나는,
퇴근하자마자 팥죽¹을 사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편두통이 오면 그는 어두운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다고 했다.
마이드린을 두 알 털어넣고 가만히 누워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 날도 그는 약을 먹고, 먼 길 달려온 나에게 재즈 기타 연주를 즉흥으로 짧게 보여주었고,
두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 긴장이 풀렸는지 깊은 잠에 빠져 들었었다.
여름날, 라꾸라꾸 침대 위 얇은 이불 아래서 곤히 잠든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워,
목이 늘어난 그의 브이넥 반팔 티셔츠를 응시하면서
담배 냄새와 뒤섞인 페브리즈 냄새를 맡으면서
그는 어떤 사람일까 가만히 생각했었다.
잠든 그가 내쉬는 숨결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던 브이넥 라인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파란 기타를 쳤고, 파란 메비우스를 피우던 사람이었다.
쨍하게 파란 하늘이 좋아서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마이드린의 파란색을 마음에 들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웃음에서 가끔 푸른 빛이 묻어났다.
그는 파란색으로 기억되었다.
하늘이 파랗지 않던 9월의 어느 비 오는 날이었나.
빗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뒤엉킨 충무로의 기억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었지만
어떤 숫자, 어떤 동물, 파란색 그리고 마이드린은 여전히 그를 선명하게 상기시킨다.
그런 마이드린이 곧 사라진다고 하니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어 몇 글자 써 보았다.
그렇다. 마이드린이 내년부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히는 아세트아미노펜, 이소메텝텐, 디클로랄페나존 성분으로 이루어진 미가펜과 마이드린 모두 생산 중단 예정이란다.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편두통 완화 목적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파란약과 빨간약이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이들의 주성분 중 하나인 이소메텝텐의 수급이 어렵게 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해당 제약사들에서는 마이드린과 미가펜이 사라진 이후의 대안으로 나프록센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이드린을 지속적으로 찾던 사람들에게 과연 그것이 괜찮은 대안이 될까 의문이 든다.
사실 그가 마이드린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복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더 나은 약이 없을까 하는 마음에 처방을 받아 구해다 준 약이 있었으니 그것은 토피라메이트 제제였다. 원래는 항전간제(쉽게 말해 간질약)으로 주로 쓰이는 약이지만,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이 과하게 유입되는 것을 예방함으로써 편두통의 완화에도 도움을 주는 약이다. 복용 후 몇 시간 이내에 사지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오거나 잦은 하품과 함께 졸음이 오는 것이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그 저릿저릿한 감각에 대해서 그가 알려 준 영어 표현을 빌리자면 "pins and needles"라고. 상수동에서 산책하던 중에 이 표현을 알려준 기억이 난다. 이것 참 쓸데없이 디테일한 기억이군.
입맛이 떨어지는 것도 토피라메이트의 부작용 중 하나로, 소아 간질 환자들에게서는 이로 인한 성장 및 발육 부진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은 오히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것으로서, ("입맛이 제발 좀 없어봤으면 좋겠어요") 현재 많은 비만클리닉과 성형외과에서 토피라메이트 제제를 다이어트약으로 비급여 처방하고 있다. 효과는 개인차가 있으니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다른 편두통 약으로는 수마트립탄(상품명 수마트란, 이미그란 등)과 같은 트립탄 제제가 자주 사용되고, 이들은 전문의약품으로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약을 구입할 수 있다.
내가 일하던 약국에도 편두통이 지독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거의 매일 울다시피하며 약국에 들러 약을 사 가는 여성분이 있었는데,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보였다. 진통소염제란 진통소염제는 이미 제약회사별로 모두 섭렵한지 오래였고, 양약으로 부족해 생약 성분의 환 제제까지 모두 먹어 보았으며, 근긴장성 두통일까 싶어 클로르족사존 성분의 근이완제도 여러 번 복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에르고타민 제제로 수마트란을 처방해 주어 꾸준히 복용하고 있음에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자매와 엄마가 쌍으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유전 또한 편두통의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이다. 나는 그녀들이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모쪼록 제대로 치료를 받아서 통증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최근에는 머리에 보톡스를 맞는 치료법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보톡스를 미용 목적으로 남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급여화가 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만, 가끔씩 맞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상당히 괜찮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따라서 평소에 복약순응도가 떨어지던 환자들에게는 더더욱 희소식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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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굳이 팥죽을 산 것도 팥이 두통에 좋다는 썰을 주워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여름에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에게 팥죽이라니 그건 정말 듣기만 해도 땀이 배어나오는 선택이었으며 차라리 설*에서 팥빙수를 시켜주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 당시에는 배민라이더스가 없었고 빙수집도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고 센스 없었던 내 스스로를 다독이는 수밖에.